책: 말 놓을 용기
개요
사내 독서모임에서 채택한 책이다.
2024년 하반기는 이 책, 좀 더 정확히는 평어를 만난 때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책 링크: http://aladin.kr/p/O4v32
배우고 느낀 점
평어란
- 이름 호칭 + 예의 있는 반말
- 존비어체계(존어+비어)와는 달리 서로 사용하는 말
- 한글이 디자인한 글자라면, 평어는 디자인한 말이다.
또래를 만들어주는 평어
나이를 따져서 위아래를 확인한다는 것은
- 친구와 동료, 또래가 될 수 있는 관계를 잃는 것이다.
- 학창시절의 또래를 같은 학급으로 제한시키고, 이는 사회에 나오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더욱 힘들게 한다.
- 평어를 통한 또래는 사회생활속 관계의 거리를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줄여준다.
반말의 종류,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
- 어릴적 친구과 같은 동등하고 허물없는, 어찌보면 예의없는 반말이 있다.
- 상하관계에서 하는 반말은 일방의 반말이다.
- 상하관계에서도 평등한 반말이 가능한데 그것은 뒤지게 싸울때이다. 적대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다.
- 여기에서 평어는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 우호적인 반말이라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평어는 모험이다.
- 평어라는 모험의 시작은 이름 호칭 + 예의 있는 반말을 쓰는 것이다.
- 평어를 사용하게 되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걸 뛰어 넘는 모험을 함께 하자.
감상평
문사철이라는 표현에서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고 배우는 것이고, 문학은 현재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드러내는 것이라면 철학은 미래를 말해야 한다. 이 책은 미래를 말하는 철학서이다.
책의 내용 정리
서문
이 책은 평어 개발, 평어의 미래와 관련한 아이디어들이 담긴 책이다.
- 평어 번역, 평어 문학
- 은유와 농담
- 호칭에 대한 생각들
- ‘너’ 와 평어
말 놓을 용기에서 모험은 시작된다. 모험으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정의를 향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어를 통해 평등과 정의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다.
평어와 또래 생각
또래 생각이란 나의 머릿속에서 내가 나의 또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말한다. 또래 가운데 있다고 상상하면 말과 생각의 방법이 달라지며, 오래되고 익숙한 자연스러움이 찾아온다. p27
학창시절에는 경계심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사회 초년생때에도 입사 동기들과 어느 정도는 가능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인간관계가 그야말로 고갈된 것만 같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잘 아는 짧은은 말에 가해지는 존비어적=수직적 압력이 말을 부지불식간에 늘려 놓았을 것이다. p30
책에서는 셰익스피어 “헨리 4세”에 나오는 대사인 “Why an otter?” 의 번역을 예로 든다.
“왜 하필 수달인가?” 로 늘여쓰지 않고 “왜 수달?” 로 번역하면 어떨까?
번역은 존비어체계의 강한 영향 아래 있다. p35
존비어체계라는 표현은 최봉영이라는 분의 놀라운 발견이라 할만하다. 존댓말이 아니라 대화의 두 방향을 모두 보면 존대와 반말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이름을 제대로 붙여주었을 때, 우리는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
왜 호칭으로 이름을 사용하는가? 서양처럼 성을 사용하기엔 한국의 성은 대부분이 한 글자이고 성의 개수개 너무 적어서 변별력이 떨어진다. ~야, ~님을 붙이면 너무 가까워져 예의를 놓치거나 너무 거리감이 든다.
우리는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를 (얼마나) 원할까?
선후배 문화는 두 가지 문제로 볼 수 있다.
- 좋은 선배와 나쁜 선배라는 선악의 문제
- 선후배를 따지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
오히려 나이 차이가 적을 때 우리는 나이를 물어본다. 2, 30년 나이 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두 살 나이 차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나이 차라면 분명 동기간의 나이 차다. 그리고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수평적인 관계를 꽃피울 수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이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p57
한두 살 나이차로도 형, 아우를 따져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 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친구나 동료다. p57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평등한 인간관계의 결핍이다. p58
나이를 따지는 문화에 대한 언급이다. 몇 살의 나이를 따지지 않게 되면 또래가 몇 배나 늘어나게 될 것이다! 유레카!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 그러한 서열을 도입하는 데는 문화적인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거기서 우리가 발견(해야)하는 것은 문화의 결핍이다. p63
나이를 따지는 것을 우리만의 문화라고 부르는 걸 거부한다. 오히려 그것은 문화의 결핍에서 비롯한 것이다.
제1세계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측면적이거나(동기간, 또래 관계) 수직적인(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공동체적 문화가 있거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제2세계는 독립한 성인들의 인간관계를 조율하고 그들이 그들 관계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평등주의적 문화가 있거나 있어야 한다. p65
가족과 학교가 있는 아이들의 제1세계와 직장까지 포함한 어른들의 제2세계로 구분해보자.
- 제1세계는 선악의 문제만이 있다. 좋은 아빠, 나쁜 선배 등등. 나름의 문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제2세계에서 1세계의 관계, 호칭을 사용하면 선악의 문제에 더해 문제의 일반성까지 마주하게 된다.
모험의 언어
“[국어학자들]은 존비어체계가 ‘한쪽을 높이는 동시에 한쪽을 낮추는 차별적 어법’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을 높이기 위한 어법’으로 규정하고, 존비어체계를 대우법, 경어법, 존경법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p78
앞서 언급된 최봉영님의 이러한 깨달음이 하나씩 쌓여 평어가 탄생한 것이리라.
반말은 낮춤말이기도 하지만, 친한 사이나 또래 사이에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편의상 전자를 ‘반말 A’라고 부르고 후자를 ‘반말 B’라고 부르기로 하자. p79
저자는 존비어체계를 존댓말과 반말 A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국인도 상하 관계에서 반말(B)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적이나 원수가 되어 싸울 때다. p84
이 평등을 확인한 덕분에 우리는 한국인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다. p85
저자는 반말(B)를 상하 관계에서 쓰는 경우를 적대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인에게 없고, 그래서 필요한 것을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라 말한다. 철학자는 이론 물리학자와 닮았다.
우호를 통해서 생겨나는 평등이라는 게 있을 때, 그 평등은 함께 모험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평등이어야 한다. p93
나는 존비어체계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항상 모험적인 삶은 산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이다. 다만 존비어체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모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높이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낮추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동등한 인간으로서 함께하는 모험이다. (중략) 반말 B는 모험의 언어일 것이다. p94
적대적 평등과 우호적 평등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 둘이 공유하는 특성을 가까움과 강렬함이라고 하자. 적대적 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를 전쟁이라고 하면 그 반대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전쟁을 파괴와 활기라고 보면 평화는 보존과 침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평화 대신 모험을 제시해준다. 모험 역시 전쟁과 같은 강렬함을 가지는 것이다.
평어와 세 개의 현실
나는 이제 글이 아니라 말도 디자인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p98
평어는 한국말의 숙명과도 같은 존비어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해결책이다. p99
세종대왕은 인위적으로 한글을 디자인했다. 평어라는 인위적인 체계로 말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최봉영의 선구적인 연구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된 문제의 이름을 얻었고, 그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p100
“존비어체계”라고 바르게 이름 붙여주기의 힘이다.
“중국의 외국어 대학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돈다. 1학년 때는 똑같지만 2, 3학년만 되면 서양 언어 계열을 배우는 여학생과 한국어 일어를 배우는 여학생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여학생들은 명랑하고 활발하며 당당하다. 하지만 한국어와 일어를 배우는 여학생들은 부드러운 반면에 수줍음이 많고 위축되어 있다고 한다.” p100. 출처는 최봉영의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p147, 148
한국과 일본은 존비어체계가 있는 두 국가이다.
평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중략)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 그 순간, 존댓말을 쓰는 현실이 내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p108
평어는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잘 쓰면 정말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반말은 문화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평어로 변모한다. p118
평어는 존중,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
기현, 안녕?
평어에서 반말을 선택한 이유
- 알려진 나라중 존댓말이 있는 언어는 한국말, 일본말 밖에 없다. 중국의 언어에도 존댓말이 없다.
- 반말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 평등은 동등할 때 실현된다.
- 적대적일때 발생하는 상하관계의 반말말고 (존재하지 않는, 않았던) 우호관계에서의 반말을 써보자.
평어 사용이 우리에게 가져올 문화는 평등한 사람들의 문화인 ‘또래 문화’이다. 또래 문화는 바로 그 평등 덕분에 자유가 찾아오는 문화이다. p133
나이도 경험도 다양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또래 집단. p135
위 아래 30년의 또래를 가지고 싶다. 나는 외롭다.
‘너’의 문제
나는 너의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편이다. 이 상태는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품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p142
저자는 이름 호칭 + (변형된, 디자인된)반말 의 다음 단계, 다음 화두로 ‘너’를 말한다.
어떤 문제를 디자인 문제로 본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겪는 문제가 어떤 것의 존재만이 아니라 부재 때문에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는 평어의 사용으로 우리는 평어의 도입 그 자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문제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 상황에서 새로운 규칙과 말을 만들어내듯 상황에 맞는 새로운 평어 사용 규칙과 말을 만들 수 있다. p146
원문에 줄바꿈을 추가했다.
- 존비어체계라는 문제를 보았다. 이 문제는 부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 그 부재를 평어라는 말의 디자인을 창조하여 해결했다.
- 하지만, 그 해결은 새로운 문제 상황을 낳는다. 우리는 또다른 창조를 이어가며 부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은유 충동
불닭볶음면 먹기 도전 이야기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일상에서 이런 찬란한 표현을 써본적이 있었던가? 영국 중고등학생들의 생생하고 찬란한 표현들. 다시 한번 저자의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부분을 보자.
- 농담이 가능한지 여부로 존댓말 ↔ 반말/평어를 구분한다. 물론 엄밀한 것은 아니다.
- 농담의 건강함 여부로 다시 반말 ↔ 평어를 구분한다. 어릴적 친구들과의 욕설이 섞인 자극적인 농담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말의 평등과 아름다움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중략) “존비어체계의 굴레에서 해방[된]” 평어의 새로운 길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략) 우리가 “서로 동행자가 될 수도 있고, 잠깐 눈인사를 하고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는, 어디로든 이어질 골목들을 가진 양방향 길이다.” p165, 166
평어는 한국 사람들에게 말의 평등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평어는 결코 어렵고, 특이하고, 힘든 것이 아니다.
후기
다시금 저자의 ‘너’에 대한 꿈을 이야기한다.
평어의 사용으로 ‘너’를 곧바로 되찾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p174
그렇지만 평어의 경이는 모든 경이가 저마다 하나의 모험을 품듯이 ‘너’를 되찾을 이야기를 모험으로 품고 있다. (중략) 평어는 ‘너’를 새롭게 되찾는 모험의 언어이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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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성민은 이 새로운 관계가 바로 ‘어른들의 우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평어 덕분에 디학은 단순한 공부 모임을 넘어 새로운 우정 공동체를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p180
김진해
“말 놓을 용기”는 평어 쓰기가 (중략) 존비어체계에 균열을 가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자 철학적 열망의 산물임을 알게 해 준다. p182
대학을 오가는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와 예절로 서로를 다치게 하지도 않지만, 서로 스며들지도 않았다. p183
존비어체계의 건조함이다. 고독함이다.
임선우
평어 모험을 시작할 때 뜻밖에도 우리이게는 무언가 더해지기 이전에 무언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중략) 수직관계, 권위주의적 문화, 말의 총량. p195
문지혁
난무하는 존댓말의 향연 속에 우리는 실상 누구도 존중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기계적인 존비어체계 속에서 커피는 자꾸만 ‘나오시고’, 물건은 ‘품절이시며’, 정체모를 ‘지인분’과 ‘팬분들’이 생겨난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