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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최근에서야 개조식과 서술식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았다. 전에는 막연히 개조식이 더 간결하고, 그래서 더 좋은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핵심만 남기면 읽는 사람도 편하고, 쓰는 사람도 효율적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그 믿음에 금이 갔다. 어떤 생각은 줄이는 순간 더 선명해지지만, 어떤 생각은 줄이는 순간 정작 중요한 결이 사라진다.
학창시절 시험공부
돌이켜보면 교과서와 시험 요약본의 차이가 그랬다. 교과서는 대체로 서술식으로 쓰이고, 시험공부를 위한 요약본은 개조식에 가깝다.
학창시절에는 종종 궁금했다. 왜 교과서를 처음부터 요약본처럼 쓰지 않을까? 왜 굳이 문장들이 이어지고, 예시와 설명이 붙고, 앞뒤 맥락을 따라가게 만들까?
지금 생각해보면, 학습은 정보를 전달받는 일이 아니라 정보를 다시 구성하는 일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고, 나만의 말로 다시 적는 과정에서 비로소 머릿속에 구조가 생겼다. 개조식 요약은 그 결과물에 가깝고, 서술식 설명은 그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슷한 생각은 필기에서도 들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쓰고, 학생들이 다시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냥 프린트물로 나눠주면 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손으로 옮겨 적는 행위 자체보다, 듣고 보고 골라 적는 과정에서 생각이 한 번 더 통과한다는 점이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AI 답변들 속의 개조식
AI의 답변도 한동안은 개조식이 많았다. 요청하지 않아도 핵심 요약, 목록, 단계, 체크리스트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런 답변을 선호했다. 빠르게 읽히고,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부러 “개조식으로 요약해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조식은 생각보다 강한 편집 방식이었다. 문장을 항목으로 바꾸는 순간, 문장 사이에 있던 망설임, 원인과 결과, 강조의 순서, 감정의 온도 같은 것들이 쉽게 사라졌다. 남는 것은 깔끔한 목록이지만, 빠져나간 것도 있었다.
서술식이 나을지도
몇 달 전, 슬랙에서 어느 분이 쓰신 한 문장이 내 신경을 간질여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믿음에 금이 갔고, 생각이 그만큼 깊어졌다.
개조식은 결론을 빠르게 확인하는 데 좋지만, 서술식은 생각이 움직인 경로를 남기는 데 좋다. 둘 중 하나가 더 우월하다기보다는, 서로 보존하는 것이 다르다. 개조식은 결과를 선명하게 만들고, 서술식은 과정과 결을 보존한다.
요즘은 글을 쓸 때 무조건 줄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이 빠른 전달인지, 아니면 생각의 흐름을 함께 남기는 일인지. 예전에는 좋은 글이란 짧고 정리된 글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어떤 생각은 문장으로 오래 걸어가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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