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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잉여인간 이바노프

주먹불끈 2024. 2. 24. 21:14

체호프와의 인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책에는 여행에 가져갈 책으로 체호프를 추천하는 부분이 있다 한다.

“(6) 혹 누가 제목을 보더라도 '체호프를 읽는다면 그렇게 이상 한 사람은 아니겠군'이라고 생각해준다.” 이 문장을 재미있게 읽고 체호프라는 이름이 나에게 각인이 되었고 이후 체호프 소설, 희곡은 챙겨 읽어왔다.

그러다가 드라이브 마이 카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속에는 체호프의 “바냐 삼촌”을 준비하는 내용이 나온다. 희곡은 읽어보기만 했는데 유튜브에는 공연 실황이 있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찾아보게 된 것이 안똔 체홉 극장의 공연들이었다. 이후 여건이 될 때마다 한 번씩 공연을 보아왔는데 2024년에는 시즌권까지 구매해서 월 1회는 가서 보려 하고 있다.

잉여인간 이바노프

2월은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보았다. 관람하는 시간 내내 즐거웠다. 강력히 추천한다.

캐스팅

더블 캐스팅에서 이바노프 이동규님, 아내 안나 서이주님, 의사 진민혁님, 외삼촌 백작 사벨스끼 김병춘님, 노파 아부도챠 박인옥님, 의장부인 지나이다 노수린님, 무희 엘마스님으로 보았다.

모든 분들의 연기가 좋아서 감히 평하기는 그렇지만 오늘 인상적이었던 분 세 분만 꼽자면, 외삼촌 백장 사벨스끼 역의 김병춘님, 먼친척 보르낀 역의 강희만님, 의장부인 지나이다 역의 노수린님 이었다.

줄거리

한 때 의욕넘치게 진취적인 삶을 살전 이바노프는 어느 순간 방전이 되어버려 아내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고, 광대같은 삼촌, 속물적인 보르낀, 심지어는 나이를 넘어선 친구인 제베제프 의장과의 관계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에 의욕을 잃는다. 아내는 폐결핵으로 죽고, 집착하듯 사랑하는 싸샤마저도 그에게는 부담이 되고, 결국 그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생각들, 좋았던 부분

  • 러시아 문학이 추구하는 미덕을 고결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레베제프는 친구 이바노프가 자신이 빌려준 돈으로 난처해지지 않게 자신의 비상금을 아내 몰래 빌려주려 하지만 이는 되려 이바노프의 고결함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 이바노프는 자신이 유대인 아내의 지참금을 노려 결혼한 속물이라거나, 아내가 죽고 쌰샤의 지참금마저 노려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자신의 고결함을 짖밟는 것에 지치고 괴로워한다.
    • 샤벨스끼 백작은 돈 때문에 백작부인이라는 지위를 욕심내는 미망인 마르파와 결혼을 하려 하는데 이는 지위와 돈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비즈니스이다. 하지만 먼저 죽어 프랑스 파리에 묻혀있는 아내를 그리워하고, ‘비즈니스’를 하려는 자신의 속물적 모습에 괴로워하다 결국 결혼을 하지 않는다.
  • 러시아 문학에서는 종종 소설 속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게 또 머리속에 오래 남는 것 같다.
    • 이바노프는 자신의 하인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처지에 빗댄다. 자신도 능력보다 힘에 부치게 무언가를 하려다 방전되고 우울증이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직장인의 번아웃과도 통한다.
    • “옛날에 하인 중에 엄청나게 힘이 센 세묜이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언젠가 추수철에 처녀들 앞에서 힘자랑한답시고 호밀 두 가마니를 들려다가 힘이 푹 빠지더니 픽 쓰러져 버렸어. 그리고 며칠 있다가 죽었지...의장님...저도 힘이 푹 빠진 것 같아요.”
    •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도 좋아하는 소설 속 이야기가 있어 간략히 적어본다. 므이쉬킨이 로고진에게 들려주는 사건이다.
    • 어떤 사람이 친구의 시계가 갑자기 너무나 탐이나서 그 친구를 죽인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살인의 순간에 신을 찾으며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다.
  • 2부에서 쌰샤, 의장부인, 백작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울어대어서 레베제프가 난처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관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많이 서글펐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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