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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국의 역사를 볼때에 항상 흐릿하게 넘어가는 시대가 있는데 오대십국 시대가 그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위진이후의 남북조시대). GPT-5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이 정리해둔다.
당나라의 멸망 (907년)
당 제국은 9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쇠퇴하여 결국 907년 멸망에 이르렀다. 중앙 정부의 권위는 이미 8세기 안사의 난(755-763) 이후 크게 약화되었고, 각지의 절도사(節度使) 세력이 사실상 독립 상태로 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874-884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장안을 점령하면서 당 조정의 통제력은 완전히 무너지다시피 했다. 이 기간 황제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고, 환관과 군벌들이 정치를 좌우하는 혼란이 계속되었다.
당 말기에 가장 세력을 떨친 군벌은 **주전충(朱全忠, 일명 주온)**과 이극용(李克用) 등이었다. 주전충은 본래 황소의 난에 가담했던 인물이지만 후에 당 조정에 투항하여 하남 일대를 장악했고, 이극용은 사타(沙陀)족 출신으로 산서 지방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904년 주전충은 당 희종을 시해하고 어린 **애제(哀帝)**를 옹립한 뒤 실권을 장악했다. 마침내 907년 주전충은 애제에게 황위 양위를 강요하여 받아내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량(梁)'**으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290년간 이어졌던 당나라는 공식적으로 멸망하고, 중국은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주전충이 세운 새로운 왕조 **후량(後梁)**은 훗날 역사에서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왕조로 기록된다. 한편 당 조정이 붕괴되자 화북 이외의 지역에서도 각지 군벌들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이후 이른바 십국 으로 불리는 지방 정권들의 전조가 되었다.
오대십국 시대 (907~960년)
오대십국 시대는 당 멸망 후 송 건국 이전까지 약 반세기 동안 중국이 **북방의 잦은 왕조 교체(오대)와 남방의 여러 지방 정권 난립(십국)**으로 혼란을 겪은 시기이다. 이 시기 북중국에서는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왕조가 빠르게 흥망했고, 강남·서남 등지에서는 열 개 안팎의 군소 국가들이 병존하였다. 중앙 권력이 부재한 가운데 각 세력은 끊임없는 전쟁과 정권 교체를 거듭하였으며, 외세인 거란(요나라) 등의 간섭까지 더해져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다.
오대십국 시대의 주요 정권 분포 (약 908년경)
당 멸망 직후 중국은 여러 왕조와 군벌로 분열되었다. 지도 중앙의 노란색 지역은 주전충의 후량(Liang) 왕조이며, 그 북쪽으로 사타족 이극용 세력의 진(Jin, 파란색), 동쪽으로 유인공 세력의 연(Yan, 분홍색) 등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오(Wu, 남색), 오월(Wu Yue, 주황색), 전촉·후촉(Shu, 노란색), 초(Chu, 연두색), 남한(South Han, 분홍색) 등 당 말기에 독립한 지방정권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영문 지명 표기는 편의를 위해 사용됨)

북중국: 다섯 왕조의 교체 (오대)
북쪽 화북 지역에서는 907년 후량 성립 이후 약 50여 년간 다섯 개의 왕조가 차례로 들어서며 패권을 다투었다. 각 왕조는 대체로 무력으로 전임 왕조를 타도하고 건국하였으며,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았다. 주요 왕조 교체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후량 (907~923)
- 건국자: 주전충(태조)
- 당 황실로부터 선양을 받아 성립된 오대 최초의 왕조이다
- 수도는 개봉에 두었으며 화북 대부분을 통치했으나, 산서 지방의 이극용 세력(진), 하북의 유인공 세력(연) 등은 후량에 복속하지 않았다
- 말기에 주전충의 통치 능력 약화와 내분으로 세력이 쇠퇴했고, 북쪽 진(晋) 왕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2. 후당 (923~936)
- 건국자: 이존욱(李存勖, 후에 당 장종)
- 이존욱은 이극용의 아들이자 산서 진 왕국을 이끌던 인물로, 923년 후량을 무너뜨리고 국호를 **'당'**으로 칭하며 옛 당 왕조의 계승을 자처했다
- 후당은 일시적으로 북중국의 광범위한 지역을 재통일했으나, 926년 이존욱이 부하의 반란으로 피살되고 양자 이사원(후에 명종)이 뒤를 이으면서 왕조가 혼란에 빠졌다
- 명종 사후 황위 다툼이 벌어져 제위가 이종후, 이종가로 차례로 넘어갔고, 궁정 내 혼란이 거듭되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 **936년 후당의 군벌 석경당(石敬瑭)**이 거란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후당을 무너뜨렸다
3. 후진 (936~946)
- 건국자: 석경당(고조)
- 후당을 무너뜨린 석경당은 **거란(요나라)**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고 즉위하였으며, 그 대가로 연운 16주에 달하는 영토를 거란에 할양하고 신종(臣從)을 자처했다
- 이로 인해 후진은 사실상 거란의 위성국으로 전락했고, 내부적으로는 거란에 우호적인 친거란파와 반거란파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 942년 석경당이 사망하고 조카인 **석중귀(石重貴)**가 즉위하자 대외 관계는 악화되었다
- 석중귀가 거란에 대해 강경책을 쓰자 거란의 야율덕광(요 태종)이 남하하여 946년 개봉을 함락, 후진 황제를 폐위시키고 후진을 멸망시켰다
4. 후한 (947~951)
- 건국자: 유지원(劉知遠, 곧 후한 고조)
- 거란이 후진을 멸망시킨 후 직접 중국을 지배하려 했으나 한인(漢人)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여 곧 철수하였다
- 이 틈을 타 947년 유지원이 태원에서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남하하여 개봉을 점령, 후한을 세웠다
- 그러나 후한은 오대 중 최단명의 왕조로, 유지원이 이듬해 병사하고 어린 아들 유승우가 즉위하자 조정이 혼란에 빠졌다
- 실권을 장악한 측근들의 전횡이 이어지다 결국 **950년 근위대 장관이었던 곽위(郭威)**가 군사를 일으켜 쿠데타를 일으켰다
- 곽위는 유승우 일파를 제거한 뒤 이듬해 스스로 황위에 올라 후한을 대체하는 새 왕조를 세웠는데, 이것이 후주이다
- 한편 후한 왕족이었던 **유숭(劉崇)**은 쿠데타를 피해 북쪽으로 달아나 **북한(北漢)**을 세우고 요나라의 지원하에 독자 생존을 도모했다
5. 후주 (951~960)
- 건국자: 곽위(곧 후주 태조)
- 오대의 마지막 왕조인 후주는 곽위와 그의 양자 시영(柴榮)(후주 세종) 2대에 걸쳐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를 펼쳤다
- 태조 곽위는 세율 개선과 가혹한 형벌 폐지 등 내정 개혁에 힘써 전란으로 피폐해진 중원 지역의 회복에 주력했다
- 954년 즉위한 세종 시영은 유능한 군주로서 중앙군을 정비하고 절도사 세력을 견제하며 국력을 키웠다
- 그는 강화된 국력을 바탕으로 통일 전쟁을 추진하여, 남쪽으로 **남당(南唐)**과 **후촉(後蜀)**의 영토 일부를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요나라 및 잔존 정권 북한까지 공격하는 등 영향력을 넓혔다
- 특히 956~958년 남당을 공격해 양쯔강 이북의 넓은 땅을 빼앗고 소금 산지 등을 확보함으로써 남당을 속국화하다시피 만들었다
- 또한 세종은 불교 사원과 승려를 대대적으로 정비(삼무일종의 폐불)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도 했다
- 그러나 959년 세종이 북벌 도중 급사하면서 통일의 대업은 완수되지 못했다
- 세종 사후 겨우 7세의 공제(시종훈)가 즉위하자 후주는 급격히 불안정해졌고, 이듬해 조광윤에 의해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된다
남방 및 기타 지역: 십국과 외세
북방에서 왕조 교체가 거듭되는 동안, 화남·화중 등 남쪽 지방에서는 십여 개의 지방 정권(십국)이 공존하고 있었다. 십국에는 다음과 같은 나라들이 포함된다:
- 양자강 하류의 오(吳)와 그 후계국 남당
- 절강 일대의 오월(吳越)
- 사천의 전촉(前蜀)·후촉
- 호남의 초(楚)
- 복건의 민(閩)
- 광동·광서의 남한
- 형주 지역의 형남(荊南, 일명 靖難)
- 산서 북부의 북한
이들 국가는 대체로 당말 혼란기에 각지 절도사들이 자립하여 세운 나라로, 명목상으로는 북방 왕조에 조공을 바치면서 실질적으로는 독자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형태가 많았다.
주요 십국의 특징
- 오월: 해상 무역으로 부를 쌓아 문화적으로 번영하면서 70여 년간 존속
- 남당: 강남 지방의 강자로 떠올라 후주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 남방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꼽혔다
- 남한: 남중국해 무역권을 장악하여 광둥 일대를 다스렸다
- 전촉 (왕건 건국)과 후촉 (맹지상 건국): 두 차례에 걸쳐 촉 지방(사천)을 지배했다
이러한 십국들은 960년 북송 건국 이후 차례로 정복 또는 병합되어 결국 송 태조~태종 연간에 모두 소멸하게 된다.
외세의 개입
한편 이 시대 중국 북쪽의 거란족은 스스로 **요나라(916년 건국)**를 세우고 화북 정세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거란은 후진의 건국을 도와 막대한 영토를 취했을 뿐 아니라, 직접 남하하여 후진을 멸망시키고 일시적으로 중원을 장악하려 했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이후 요나라는 북방의 강자로서 오대 왕조들과 대립하거나 때로는 북한 등 잔존 정권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밖에도 서북방에서는 탁발계 샤토족 이 세운 서하가 형성되었고, 서남쪽 운남 지역에는 대리국 이 존속했다. 또한 당시 한반도와 일본열도, 베트남 등 동아시아 각지에서도 후삼국 이나 응오왕조 등의 여러 왕조들이 난립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국제 정세 역시 당 이후 중국의 통일이 지연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송나라의 건국 (960년)
- **송나라(북송)**는 오대시대의 마지막 왕조였던 후주를 무너뜨리고 건국된 통일 왕조이다. 후주 세종 시영의 급작스러운 사망 후 어린 공제가 즉위하자, 정권의 불안정을 틈타 후주의 옛 신하들이 각지에서 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산서의 북한 정권은 요나라의 지원을 받아 후주를 침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후주 조정은 이를 막기 위해 **960년 정초에 조광윤(趙匡胤)**을 비롯한 중앙 금군을 변경으로 파병했다. 조광윤은 후주 세종 때부터 금군 최고지휘관(전전도점검)으로 중용되던 장수로서 군내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정 도중 장병들은 어린 황제로는 요나라에 맞서기 어렵다는 불안에 사로잡혔고, 결국 960년 정월 개봉 동북쪽 진교(陳橋)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여 장병들이 조광윤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였다(진교의 변). 조광윤은 곧바로 개봉으로 돌아와 어린 공제를 보호하는 한편 후주 왕실로부터 선양의 형식을 통해 황위를 물려받았다.
이렇게 해서 960년 음력 1월 16일, 조광윤은 황제로 즉위하여 국호를 송(宋)이라 선포하였으니 송 왕조의 개창이다. 이로써 5대 50여 년간 이어진 군벌 할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통일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송 태조의 정책과 통일 과정
송 태조 조광윤은 즉위 후 전임 황제였던 후주 공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극진히 예우하였으며, 이후 그의 후손들도 남송 멸망 때까지 보호를 받았다. 이는 왕조 교체 시 전왕조 황실을 숙청하던 오대의 악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평가된다.
송 태조는 곧바로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펴서 군사권을 황제에게 집중시키고 절도사의 군사력을 회수하였으며, 문민 관료 체제를 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그런 다음 선대 후주 세종의 유업을 이어받아 중국 재통일에 착수하였다.
송나라는 건국 후 960년대에 이미 형남(963년 병합)과 후촉(965년 정복)을 평정하고, 남한·민·오월 등을 차례로 병합하였다. 마침내 979년 최후의 잔존 세력인 북한을 정벌함으로써 송 태종 때 전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로써 당 멸망 이래 지속된 분열과 혼란의 시대는 끝나고, 송 왕조 아래 중국은 다시 하나의 제국으로 재편되었다.
주요 사건 연표 (907~979년)
- 907년: 당 애제가 실권자 주전충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퇴위함으로써 당 왕조 멸망. 주전충은 국호를 후량이라 선포하고 황제가 됨
- 923년: 산서 진 왕국의 이존욱이 후당을 건국하여 후량을 멸망시킴. 후당의 수도 낙양에서 옛 당 황실 부흥 시도
- 936년: 후당의 장군 석경당이 거란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후진을 건국함. 그는 거란에 연운 16주를 할양하고 신하를 자처하여 후진은 거란의 영향권에 들어감
- 946년: 거란(요나라) 군대가 후진을 침공하여 수도 개봉을 함락, 후진 출제 (석중귀)를 폐위하고 후진 멸망. 거란은 일시적으로 화북을 장악하지만 곧 철수
- 947년: 유지원이 태원에서 즉위하여 후한 건국. 거란의 퇴각 후 개봉을 접수하고 화북 재장악
- 951년: 후한 내부 쿠데타로 곽위가 황위를 찬탈하여 후주 건국. 후한 황족 유숭은 태원 일대에 북한을 세워 존속
- 959년: 후주 세종 시영이 북벌 원정 도중 사망. 어린 공제가 즉위하여 정국 불안 심화
- 960년: 후주 장수 조광윤이 진교의 변을 통해 정변을 일으킴. 조광윤은 후주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송나라 (북송)를 건국하고 후주를 대체함 (오대십국 시대 종결)
- 979년: 송 태종이 최후까지 남아 있던 십국 북한을 정벌하여 중국 통일 완성 (송 왕조에 의한 재통일)
참고 자료
중국 통일 왕조였던 당의 붕괴와 그 이후 오대십국 시기의 혼란, 그리고 송 왕조의 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구오대사》, 《신오대사》 등의 사서와 현대 연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중앙 집권의 중요성과 왕조 교체기의 폐해를 보여주며, 송대의 정치 구조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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