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라진 개발자들

개요

링크드인에서 <사라진 개발자들> 기대평을 적으면 책을 나누어주는 이벤트를 하여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알라딘 링크: http://aladin.kr/p/C4u6e

선입견

읽기전 두 가지의 선입견, 혹은 기대를 가졌다.

• 기대: <벨 연구소 이야기>, <해커, 광기의 랩소디> 처럼, 신화나 전설에 가까운 컴퓨터과학 초창기의 흥미진진한 천재들 이야기이려나?
  • 벨 연구소 이야기: http://aladin.kr/p/Iz8V
  • 해커, 광기의 랩소디: http://aladin.kr/p/eeSd9
• 우려: 생각만큼은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애써 힘들여 과대포장한 것은 이니겠지?

둘 다 틀렸다

나름의 재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는 드라마틱한 요소는 적다. <히든 피겨스>와 같은 영화의 느낌보다는 담담히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에필로그에는 나와 같은 우려의 극단이 있었음을 이야기해준다. “수정주의적 역사학” 이라고 비난한 윌리엄 애스프레이 박사가 대표적이겠다. 이 책의 “담담함”은 이러한 공격에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전략이라 하겠다.

좋았던 점

역사를 공부할 때에 재미있는 지점은 단순히 연도와 사건으로만 기억하던 것들을 깊이 파고들 때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에니악, 에드박, 유니박, 폰 노이만 같은 단순한 단어들로만 외워야 했던 초기의 컴퓨터, 특히, 최초의 컴퓨터라 부르는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 탄생의 전후관계와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되었다. 나는 이제 에니악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면 더 이상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전후 관계는 이렇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남자들이 전쟁터로 가게 되니 여성들의 사회 전반에 대한 참여가 요구되었고 여성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대포를 쏘아 정확하게 목표 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각도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습도, 바람, 토양에 대해 각 대포 모델들을 입력값으로 하여 대포를 어떻게 설정해야할 지를 표로 만들어야 했다.

초기에는 여성 컴퓨터(계산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계산을 해야 했지만 이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에니악이다. 에니악에는 프로그래밍이라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이 작업을 기존에 탄도 계산을 하던 여성들이 한 것이다. 단지 도면과 다이어그램 밖에 없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하나씩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만들어 간 것이다. 반복, 분기와 같은 개념을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동작을 하도록 만들어가다보니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말 그대로 첫 컴퓨터인 에니악에서 첫 프로그래밍을 한 이들은 여성인 것이다.

역사책이다.

담담히 서술하지만 많은 차별이 나온다. 여성, 흑인, 유대인, 기혼자라서 겪게 되는 차별. 그렇게 주어진 현실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 이들의 모습은 단지 여성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 그 시대 차별의 가해자들(?)이 딱히 나쁜 이들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신하의 성별에 편향을 두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시대를 넘어서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해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편견을 가진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시공간을 넘어서 공정한 모습을 보인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역사적 기록의 의미를 두기 위해 여섯 여성으로 대표되는 초기 프로그래머 분들의 가족사와 이후의 이력까지 정리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